
올해 국내 개봉 영화 처음으로 500만 관객을 돌파한 ‘좀비딸’과 지난 주말 첫 방송부터 넷플릭스 23개국에서 1위를 차지한 드라마 ‘폭군의 셰프’(tvN)에는 공통점이 있다. 웹툰·웹소설이 원작이라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국내 영상 콘텐츠 시장에는 웹툰과 웹소설을 영상화한 영화·드라마가 쏟아지고 있다. 올해만 해도 중증외상센터·스터디그룹·악연·광장·견우와 선녀·전지적 독자 시점 등 숱한 작품이 웹툰·웹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내년엔 나 혼자만 레벨업·현혹·재혼황후·참교육·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 등의 작품이 줄줄이 공개를 앞두고 있다.
웹툰·웹소설은 이미 독자층이 탄탄해 사전에 검증된 콘텐츠로 평가받는다. 기존 팬덤의 기대와 지지가 흥행의 기본 바탕이 돼 높은 초기 관심과 안정적인 흥행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팬덤이 자발적으로 홍보를 하는 등 마케팅 측면에서도 효율적이다. 검증된 지식재산권(IP)이라는 점에서 투자 유치에도 유리하다. 원작의 조회수·판매량· 팬덤 등이 투자 지표 역할을 해 투자자와 제작사는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작품 개발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점이 영상물 제작 시장에서 큰 메리트로 꼽힌다. 원작에서 이미 스토리와 캐릭터, 설정이 구축됐기에 제로부터 세계관을 짤 필요가 없다. 서사의 뼈대와 세계관이 이미 준비돼 빠르고 효율적으로 제작에 돌입할 수 있다. 원작을 통해 시각적인 콘티와 텍스트 기반의 서사를 확보할 수 있기에 각색 과정도 수월하다.
극장 관객 수 감소와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의 공세로 국내 시장이 수익성 악화와 과잉 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만큼 업계가 검증된 원작에 기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한 선택이 곧 원작 의존이라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가득 메운 안전한 이야기들 속에서 옅어진 순수 창작물의 숨결은 유난히 아쉽게 다가온다.
웹툰·웹소설 원작 작품은 구조적으로 ‘원작과의 비교’가 제일 큰 관전 포인트일 수밖에 없다. 작품 공개 전부터 대중은 원작과 일일이 비교하며 캐릭터가 얼마나 싱크로율이 높은지, 세계관을 어떻게 영상으로 재현했는지 등에 집중한다. 공개 이후에도 원작과의 차이점은 무엇이고 기존 팬덤의 만족도는 어떤지 등이 화제를 모은다. 인기 IP 원작 작품은 태생적으로 원작에서 벗어날 수 없다.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작품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이야기와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기에 대중에게도 신선한 경험과 충격을 제공한다. 원작과 비교하면서 작품을 감상하는 게 아닌 온전히 새로운 감상 경험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순수 창작물은 신진 작가 발굴과 창작 실험 공간을 제공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신인 작가가 창작 실험을 할 수 있는 작품이 있어야 작품 개발과 제작, 배급으로 이어지는 생태계가 건강하게 돌아간다. IP 의존도가 높아지면 기존 인기 작품 중심으로만 제작이 이뤄져 신인 작가가 진입할 기회가 제한된다. 웹툰·웹소설 붐이 일어나면서 신인 작가 등용문 역할을 해온 단막극 역시 침체된 상황이다. 신진 창작자 발굴은 예전보다 훨씬 어려워졌고 그 빈자리를 기성 IP가 채우고 있는 형국이다.
산업 간 융합이라는 시대적 변화에 따라 웹툰·웹소설 원작 작품은 필연적이다. 다만 안전하고 익숙한 이야기만 가득하다면 콘텐츠 산업 또한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 ‘기생충’과 ‘오징어게임’이 보여줬던 순수한 재미와 신선한 충격이 그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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